문의하기

이용후기 롤놀이터

비회원  104.234.140.117 2023-05-24 16:25:15 32회

몇 번이나 걸었지만, 율리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. 진 과장이 적당히 구실을 둘러놨을 테니까, 큰일이야 없겠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이번엔 나 여사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.


“엄마, 결혼식 어떻게 됐어요?”

[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? 그런가 보다 하고 다들 집에 갔지. 회사를 위해서 본인 결혼식마저 미루고 달려갔다는데 누가 뭐라고 해.]

처음부터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겼던 나 여사는 시큰둥한 목소리로 답해주었다.


“그렇지. 그래야지.”

하지만 안도하는 건 잠시일 뿐, 나 여사가 불평과 함께 폭탄선언을 했다.


[율리, 걔, 정말 안 되겠더라. 너 안 온다고 하니까, 열 받는다고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그냥 식장을 걸어 나갔어. 자기가 뭔데, 성질을 부리면서 뛰쳐나가? 아예 이참에 이 결혼 없던 걸로 하자.]

“엄마, 미쳤어?”

민우는 사색이 된 얼굴로 빽 소리를 질렀다. 다 된 밥에 재를 뿌려도 유분수지! 하지만 호락호락 당하고만 있을 나 여사도 아니었다. 민우만큼 큰 소리가 되받아쳤다.


[닥쳐! 오늘 얼마나 가관이었는지 알아? 하여간 내가 채 의원님 만나서 따질 거야. 도대체 딸 교육을 어떻게 했냐고.]

나 여사 성질에 채 의원을 찾아갈 게 분명했다. 민우는 죽는소리로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.


“제발 그러지 마! 안 그러면 나 여기서 제대로 일 처리하지 못하고, 그러다 사고 날 거야.”

[얘가 지금 제 엄마를 협박하네.]

“협박이 아니고 정말이야. 여긴 한국과 다르다고.”

그제야 나 여사는 성질을 거두며, 돌아와서 다시 이야기하자며 전화를 끊었다. 우선 급한 불을 끈 민우는 분노를 삭이며 이를 갈았다.


“내가 박 사장 이 X끼, 가만히 두나 봐라.”

하필 율리와 결혼하는 날에 행패를 부리다니!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. 민우는 씩씩거리며 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. 그런데 신호음 한 번 만에 받던 사람이 웬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았다.


“에이 씨X.”

욕 한 사발을 메시지로 남기려던 민우는 잠시 숨을 돌리고 흥분을 가라앉혔다. 바쁘게 일 처리하느라 전화를 못 받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.

호텔에 도착해서 전화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민우는 신속히 공항을 빠져나갔다.

***



“아니에요, 그런 거!”

율리와 현경은 화들짝 놀라며 서로 껴안은 팔을 놓았다.


“사랑하는 건 맞지만, 롤놀이터 거 아니라고요.”

동시에 두 여자의 입에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. 제호는 그것마저 못마땅하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. 그가 벽에서 몸을 일으켜 가까이 걸어오기 시작하자, 율리는 얼굴을 붉히며 재빨리 현경의 뒤로 몸을 숨겼다.

현경과 단둘이 있을 땐 몰랐는데, 그를 본 순간 진하게 키스했던 몇 시간 전 일이 떠올랐다. 슬립만 입은 모습을 그에게 보여준 것도 그렇고, 뒤늦게 부끄러움이 느껴져 도저히 얼굴을 볼 수 없었다.

현경은 무슨 일이냐는 듯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, 율리는 양손으로 현경의 얼굴을 도로 앞쪽으로 돌려버렸다.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제호가 무심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.

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.